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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 스토리:   안 사랑

  1) 2006년 9월 초 발병

  여름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9월 초, 진성이는 벌써 일주일 째 감기에 걸려서 투통을 앓고 있었다. 그 날도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다고 누워 있다가 밤 열두시가 다되어 3층 꼭대기에 있는 자기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성이가 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엄마를 부르기도 하고 아파서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엄마가 "진성아 왜 그러니!!"라고 소리를 지를 때 예삿일이 아닌 것을 직감했다. 나도 뛰어 내려가 보니 진성이 얼굴이 회색빛이었다. 눈동자는 어디를 보는지 모를 만큼 흐릿한데 자꾸 화장실 문을 닫으면서 "나 들어갈래!!"라고 외쳤다. 엄마는 화장실 문을 잡고 "왜 그러니? 진성아, 진성아!!" 하고 진성이를 붙잡았다. 거실에 털썩 주저앉은 진성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꾸 중얼중얼 헛소리를 하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쇼파에 누워있는데 이상한 고음으로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심각해졌다. 열도 심해서 병원에 가야했지만 새벽이라 응급실에 가도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집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진성이는 자꾸 귀신같은 목소리로 헛소리도 하다가 아프다고 울기도 했다. 아빠는 가족을 모두 진성이 곁에 모여 앉게 하고 기도하자고 하셨다. 그래서 가족이 모두 울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새벽 5시경에 진성이는 경기를 일으켰다. 나는 진성이 사지가 뻣뻣해지고 눈과 입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진성이가 죽는 줄 알고 너무 놀랬다. 엄마가 얼음을 가져오라고 시키셨는데 손이 떨려서 얼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진성이가 죽을까봐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아침이 되자 진성이는 119 구급차에 실려서 대동병원으로 갔다. 거기서 상태가 심각하다고 진단을 받고 다시 구급차를 타고 동아대 병원으로 가서 입원했다. 진성이는 40도에 이르는 고열에 연속적인 경기로 4일간 의식불명이었다. 열이 더 높아지면 뇌가 녹기 때문에 웃옷을 벗기고 얼음팩으로 찜질하고 코에는 산소호흡기를 달았다. 머리에는 뇌파를 검사하는 선을 연결하고 허리와 팔에는 경기를 할 때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붕대를 가지고 침대 난간에 묶어 놓았다. 그리고 진성이는 5일 만에 깨어났다. 부분기억상실증 증상도 있었고 언어장애와 운동신경에 문제가 있었지만 한 달 동안의 입원치료하면서 그런 부분은 깨끗이 나았다.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쓰러진지 한 달만에 퇴원하였지만 뇌염의 후유증으로 간질 발작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언어장애나 기억상실증 같은 뇌염의 외적인 후유증이 모두 치료된 일은 앞으로 진성이와 우리 가족에게 부어주실 은혜를 예고하는 듯 하여 우리 모두 감사하였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의지 할 수 있는 믿음이 진성이와 우리 가족에게 생겼다.


2) 퇴원 후 진성이의 삶

  뇌염을 앓은 후 초기엔 간질 발작이 수시로 일어났고 증세도 격렬하였다. 3년 이상 발작을 한 번도 하지 않아야 완치된 것이라 하였는데 진성이의 발작 횟수는 2주일에 한 번에서 두 번 정도였다. 대부분은 자다가 증상이 나타났고 간혹 일상생활을 하다가 쓰러지기도 하였다. 전신발작을 하게 되 면몸이 뒤틀어지고 얼굴 근육이 굳는다. 아름다운 얼굴이 일그러져 잿빛으로 변하고 몸의 근육은 모조리 뒤틀리고 눈을 치켜든 채 1~2분 정도 경련을 하였는데, 지켜보는 이는 한 시간도 넘게 느껴졌다. 간질 발작을 하고 나서도 고통은 여전했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뇌에도 무리가 가서 진성이는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했다. 그래서 발작 후에도 진성이와 가족들은 남은 고통을 함께 짊어져야 했다.질병으로 인해 진성이가 가장 힘들었겠지만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지는 듯하였다.
진성이의 고통은 육체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병과 그로인해 학교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마음대로 외출도 할 수 없는 부자유의 몸이 되어 버린데 상황에 처한 것이다. 여기에 간질 발작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까지 더해져서 진성이가 받는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고통도 컸다. 그래서 진성이의 신경이 날카로워 지고 타인에 대해 피해의식이 가득했다. 퇴원한 후 집에 있으면서 진성이가 하는 일은 오직 컴퓨터 게임이었다. 신앙 없이 맞이하게 된 이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도피처로 컴퓨터 게임을 선택한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쩔 땐 하루에 16시간을 게임만 하기도 하였다. 생활 패턴도 일그러져서 남들과 협동하거나 규칙적으로 삶을 맞추는 것조차 잘 안되었다. 오죽하면 식사시간에  밥 먹는 것도 안 되어서 엄마와 때마다 싸울 정도였으니까.

  3) 가족의 심정

   진성이의 병이 발병한 이후로 1년은 집에서 지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질병 때문에 삶은 어그러지고, 그로 인한 슬픔과 고통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늘 우리 가슴속에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막내아들을 오로지 기도로 낳은 엄마에겐 설명 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이 가슴에 박혀있었다. 엄마는 진성이가 언제 아플지 모르기 때문에 잠깐의 외출도 마음을 졸이며 하였다. 퇴원한 후 집에서 게임만 하는 아들 때문에 간장이 녹는 듯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진성이가 처음 증세를 보이며 아팠던 날, 가족이 모두 정신이 혼미한 진성이 곁에 모여서 기도회를 했었다. 그 때 사랑이 부족했던 가족 관계를 회개하고 서로 용서하였다. 그리고 이 일이 하나님께로 왔으며 반드시 놀라운 은혜로 우리 가정을 세워주시고, 진성이를 고쳐주실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기도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선 기적적으로 진성이를 살려주셨다.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만 답이 있고 하나님께만 모든 방법이 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으며 굳게 믿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슴 속에선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바위처럼 단단히 자리잡아 좀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4) 기도원에서의 삶과 누나의 합류

  2007년 9월쯤 진성이가 친구랑 서면에 놀러갔다 오면서 버스에서 간질발작을 한 일이 있었다. 이 일은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오줌까지 눌 정도로 심하게 발작하고, 질질 끌려서 버스에서 내려진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슬픔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진성이 본인에게도 충격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외출하거나 움직일 수도 없는 답답함 때문에 집을 뛰쳐나간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진성이의 질병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도 있었다. 전자파나 도시의 혼잡한 환경이 진성이의 몸상태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닫된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진성이를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할 필요를 느끼셨다. 그래서 2007년 11월, 진성이와 함께 기도원에 들어가기로 하셨다. 병원이 아니라 기도원을 택한 이유는 진성이에게 치료도 필요하지만 가장 먼저 믿음이 생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목회를 하고 계시는 상황이었지만, 질병의 고통에서 진성이와 우리 가족을 건져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아빠와 온 가족이 희생하여 진성이가 엄마와 기도원에 들어가도록 합의하였다.

  엄마는 기도원에서 진성이를 간병하고 낮에 집에 잠깐 오셔서 가족을 돌보셨다. 그런데 기도원에 있을 땐 고독한 질병의 싸움과 가족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고, 집에 와선 혼자서 기도원에 있을 아들 걱정이 가득했다. 엄마는 마음에 조금의 여유도 없이 쫓기듯 집과 기도원을 오갔다. 과도한 짐을 혼자서 지고 계셨기 때문에 이 상태로 가다간 엄마마저 병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2008년 2월에 나도 기도원에 같이 살면서 엄마가 집에 가고 안 계시는 동안 진성이와 함께 지내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상태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악한 영의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나의 작은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셨기 때문이다.

5) 엄마 가슴에 흐르는 피

  복학을 6개월 늦추고 기도원 생활을 시작한 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다. 산골짜기에 있는 기도원의 밤이 너무 무서웠다. 푸세식 화장실과 제대로 된 샤워시설도 없는 열악한 환경도 참기 힘들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영적 전쟁을 몸소 실감하게 되었다. 엄마도 신경이 날카로운 진성이와, 믿음으로 서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악한 영들의 공격 때문에, 날마다 밤을 새우며 기도하고 싸우고 계셨다. 그런 생생한 영적 전쟁의 현장에 있어본 경험이 없던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섭식장애와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금식을 결단했다.
  2월 23일 토요일부터 금식을 시작하였는데, 이틀째인 주일 아침에 진성이가 심하게 간질 발작을 해서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남은 6일 동안은 금식하면서 혼자 기도원에 지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선 2일 째 밤에 어둠과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를 만나주셨다. 이사야 58장 6~12절을 말씀이 내 가슴을 강하게 내리치면서 순간 하나님의 강한 임재가 온방을 가득 채웠다. 방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찬양하는데 하나님께서 내 눈을 여셔서 내 방 지붕위에서 불 칼을 들고 지키고 있는 천사 두 명을 보게 하셨다. 나는 너무 놀라서 처음엔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밤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이 후 몇 개월 동안 어딜 가든지 지붕에서 불 칼을 들고 지키고 있는 천사가 보였다. 이렇게 은혜 속에서 금식을 계속하였다. 5일째엔 진우용 목사님, 전영희 전도사님과 장로님께서 심방도 오셨다. 금식한지 6일이 되자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방에 초청해서 좋은 차를 타 주셨다. 차를 마시고 잠시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는데 환상이 보였다. 이 환상을 통해 질병으로 우릴 괴롭히는 악한 영의 존재와 엄마의 큰 슬픔에 대해 선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병실에 진성이가 누워있고 엄마가 기도하고 계셨는데, 흰 천으로 머리를 두르고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할머니가, 붉고 큰 삼지창을 가지고 있다가 진성이 머리를 콱 쑤셨다. 그러면 진성이가 간질발작을 하였다. 첫 번째 장면은 엄마가 기도할 때 그 할머니가 엄마 심장에 삼지창을 박았다. 그러자 엄마가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할머니는 가고 천사가 엄마를 부축했다. 그리고 병실에서 기도원 방으로 배경이 바뀌었다. 엄마는 그때 날마다 밤 열두시부터 새벽 두시 까지 진성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시고 또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예배에 나가셨다. 환상 속에 이런 엄마의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다음 장면엔 할머니가 진성이 머리를 또 콱 쑤셨다. 그랬더니 진성이가 간질 발작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진성이 머리가 다치거나 혀를 깨물지 않도록 부축하셨다. 근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엄마 등에서 퍼렇고 투명한 유령 같은 엄마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 엄마는 유방이 모두 잘려나가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엄마는 기도원 방문을 열고 잠시 나갔다가 다시 진성이를 부축하는 엄마에게로 돌아와서 등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눈을 뜨고 싶기도 했고 소리를 내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환상이 모두 끝나고 눈을 떴을 땐 차도 식어있고 목사님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무슨 내용인지 몰라서 고민하며 내 방으로 오는 순간 모든 것이 깨달아졌다.
  진성이의 질병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자녀를 망하게 하는 악한 마귀로부터 온 것이고, 약한 진성이의 육체를 지금도 공격하고 있었다. 엄마는 홀로 악한 영과의 싸움을 싸우고 계셨는데, 중보할 때마다 진성이 대신 엄마를 공격하기도 하고 피곤하게 만들어서 쓰러지게도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엄마가 날마다 대여섯 시간씩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동원해서 도우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의 형용할 수 없는 슬픔도 깨닫게 되었다. 진성이가 쓰러져 뒹굴 때 엄마는 혼이 나갈 정도로 슬프신 것이다. 유방이 잘려서 피를 흘리며 걸어 나가는 엄마의 모습은 찢어지는 엄마의 가슴이며 엄마의 영혼이었다. 그 날 오후 눈물을 쏟으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엄마를 도와주시고 진성이를 살려주셔서 악한 권세가 무너지고 하나님만 영광 받아 주옵소서!!!

  7일 금식을 끝내고 다음 날 오전에 진성이가 퇴원해서 다시 기도원으로 왔다. 엄마와 진성이가 오기를 기다리며 방청소를 했는데,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이 되는지 눈물 콧물로 방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나는 달라졌다. 이기적이고 어렸던 내가, 엄마를 위해 진성이를 더 잘 돌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힘이 되어야 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6) 기적의 시작

  기적은 한 번에 터지는 복권 같은 것이 아니다. 나아만 장군이 일곱 번째 요단강에 물을 담그자 나병에서 나았던 것처럼, 은혜는 보이지 않는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서, 하나님의 때에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이런 영적인 원리를 잘 알고 계셨던 엄마는 기도원에서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려고 무리하지 않으셨다. 목사님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말씀 붙들라며, 진성이와 나에게 신앙생활에 전념하도록 가르치셨다. 그리고 하나님만 붙들고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시간을 적어도 3년 이상 해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애초부터 진성이와 나도 3년을 각오하고 기도원에서 지냈다.
  기적은, 믿음도 없고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너무 연약하였던 나에게 먼저 일어났다. 2008년 여름 사경회 때 은혜를 받고 기도가 터진 것이다. 방언이 아니라 오직 언어로만 하루에 3시간 이상 부르짖으며 기도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의 은혜를 주셔서 기도할 때마다 예배시간 때 들었던 설교 말씀과 통독이나 큐티할 때 묵상하였던 말씀이 줄줄 꿰어져서, 몇 시간씩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였다. 특히 주기도문의 내용과 순서대로 기도하는 것을 기도원에서 배우게 되었는데, 한 번 하는데 50분 걸리는 주기도문 기도를 하루에 여섯 번 이상도 한 적 있었다. 기도가 터지자 내 안에 어둠의 권세를 행사하던 악한 영들이 드러나 축사를 통해 쫓겨나고, 옛사람의 악한 습관들이 뽑히면서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다.

  8월에 은혜를 받고 기도와 말씀 붙들며 마귀와 옛사람과 싸우기를 3개월 이상하니까 주변에서 "사랑이가 변했다" , "사랑이 철들었다" , "사랑이가 참해졌다." 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덜렁이, 까불이로 평생을 살아왔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얼마나 신기하고 신났는지 모른다. 내 힘으로 억지로 바꾼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붙드시는 성령께서 다른 모습으로 행동하도록 인격적으로 나를 이끌어주셨다. 특히, 우울증이 사라지고 내 안에 믿음과 평안과 기쁨이 넘쳤다. 하나님께서 천하게 끝마칠 내 목숨을, 기적같이 살려주신 것을 나는 알았다. 이런 은혜의 물결 속에, 진성이와 나를 변화시키고 살려주실 두 번째 하나님의 기적 같은 계획이 시작되고 있었다.

  7) 기도에 목숨을 걸었다

  2008년 12월의 어느 날, 기도원 저녁 예배 본문은 마태복음 15장 21~28절이었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신 내용이었다. 나는 여기서 크게 도전을 받았다. 병자가 아니라도 중보하는 이의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주신다는 것이다. 가정에 한 사람의 희생양이 있으면 그 가정이 산다고도 말씀하셨다. 나에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내가 그 사람이 되자!! 그래서 진성이를 위해 날마다 주기도문의 내용과 순서를 가지고 기도하기로 결심하였다. 하루에 한 시간을 중보해야 하는데 사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 날로 결단하고 중보기도를 시작하였다. 내 기도와 다른 중보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는데 보통 하루에 3~4시간을 기도했다. 거기에 더해서 한 시간 진성이 중보를 하려니 기도원의 일과에서 다른 시간을 내어야 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새벽 두시 반에 일어나서 숨죽여 기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3개월을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크게 변화시켜 주셔서 진성이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달라졌다. 진성이가 아프기 때문에 나에게 거칠고 무례하게 행동하고 나를 무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제멋대로 신경질을 부릴 땐 너무 슬프고 화가 나서 저수지 근처에서 펑펑 운적도 있었다. 사랑하기는커녕 미움이 더 많았던 때에 기도를 시작했는데, 기도 할 때마다 진성이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시는 게 아닌가. 하나님이 이렇게 진성이를 사랑하시고, 진성이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이끄시는지 기도하기 전엔 몰랐다. 지금의 진성이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기도할 때 나를 통해서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놀라웠다. 처음엔 기도할 때만 진성이가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젠 진성이가 참으로 하나님의 일꾼 같고, 또 듬직하고 복덩어리같이 보였다.
  하루는 오전에 기도하고 방에 들어갔는데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진성이 얼굴이 꼭 열 살짜리 귀여운 꼬마같이 사랑스러운 게 아닌가! 그러자 진성이 때문에 괴롭던 기도원 생활이 진성이 때문에 믿음이 생기고 살만해졌다. 그리고 누나로써 미덥지 못했던 부분도 반성하고 회개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진성이를 사랑하게 하신 이유는 또 있었다. 아빠가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엄마가 기도원에서 사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엄마는 2008년 1월부터 집에서 주무시고 진성이와 나만 함께 기도원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물론 저녁예배 때 엄마가 오셔서 같이 예배드리고 집에 가시지만, 함께 생활할 때처럼 모든 것을 챙겨주실 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진성이가 잠이 얇게 들었을 때 간질 발작을 자주 하기 때문에 엄마가 없는 밤과 새벽을 진성이와 보내면서 간질 발작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기도원에서 일 년 넘게 생활하면서 우리에겐 믿음도 생기고 하나님께서 담대한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처음에 아팠을 때만큼 진성이의 발작이 우리에게 힘들진 않았다. 그러나 어쩌다 발작을 연속으로 심하게 하면 생명에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일주일 넘게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심할 때도 있었기 때문에 긴장과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 내려가시고 난 뒤 초반엔 많이 싸우기도 하고, 그래서 진성이가 더 아픈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엔 부끄럽게도, 짐을 싸고 기도원에서 내려가려고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런 와중에 진성이가 몇 번 아프기도 하고 계절도 바뀌었다. 여러 시험과 고비가 있었지만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돌보심이었다.

  기도원에서 나도 기도에 전념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시집와서부터 오직 기도에 목숨을 거셨다. 그리고 2008년 9월 초에, 말 그대로 기도에 목숨을 걸고 40일 금식기도를 작정하셨다. 나는 40일이라는 숫자가 이렇게 까마득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일주일이 지나자 우리 모두 날짜 세기를 포기하였다. 늦여름이 끈질기게 끝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날짜를 세어도 40일은 여전히 지나가지 않고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10일 지나자 엄마의 몸에 이상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줌이 샛노란색으로 나오더니 온 몸이 노랗게 변했다. 그리고 며칠 뒤엔 눈까지 노래졌다. 목사님과 아빠도 말리셨지만, 엄마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의 약속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그만 둘 수 없다고 하셨다. 어떤 날은 엄마 모습이 너무 가엾고 힘들어서, 하루 종일 엄마한테 가보지 않은 날도 있다. 또 어떤 날 아침에 엄마한테 가면, 간밤에 할머니한테 받았던 아픔과 상처가 씻겨나가느라 밤새 울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렇게 날은 지나가고, 금식 15일 째인 주일이었다. 엄마랑 안면이 있는 내과 의사 선생님이, 우연히 부산에 오셨다가 엄마를 보신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몸 상태를 확인하곤, 목숨이 위험하니까 당장 금식을 중지하고 병원에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간수치가 사망치에 다달아서 900이 넘었다. 하루만 늦었어도 비명횡사 할 뻔했다고 의사가 말하였다. 엄마는 정말 하나님께 목숨을 거셨고, 하나님은 엄마 목숨을 살려주셨던 것이다.

8) 진성아, 우리도 목숨 걸고 기도하자

  엄마가 금식 기도하시다가 돌아가실 뻔한 일이 있은 뒤로 진성이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인하고 담대한 엄마의 든든한 뒷받침 덕분에 그나마 살아가고 있었는데, 엄마가 몸져누우신 것이다. 그 때가 추석 즈음이었다. 엄마는 일주일 동안 입원하셨는데 그 때까지도 우리는 철이 덜 들었던 것 같다. 그 사이에 또 크게 싸워서 병원에 있는 엄마한테 내가 전화해서 내려가겠다고 소동을 부린 것이다. 그 일로 목사님한테 아주 호되게 혼이 났다.
  하나님께선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었던 엄마라는 방어벽을 무너뜨리셨다. 엄마는 철인이 아니었다. 2년간 새벽에 잠도 안자고 진성이를 위해 기도하고, 기도원과 집을 오가면서 무리했기 때문에, 드디어 탈이 나고 만 것이다. 엄마는 예전처럼 수시로 기도원을 드나들지도 않기로 하고, 휴식 시간도 가지기로 하셨다. 그렇다고 기도원에 하루라도 안 오신 적은 없다. 예배를 같이 드리고 우리들의 영적, 육적 상태를 점검하고 집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엄마도 인간이고, 자칫하면 우리를 영영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특히 내가 더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도 몸을 추스르시고 11월이 되었다. 엄마는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온천교회와 아빠를 돌보는데 집중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앞으로 기도원에서 계속 훈련 받을 우리의 믿음을 위해, 진성이의 치료를 위해, 40일 작정 예배를 드리기로 하셨다. 목사님이 우리 가족을 위해서 피곤하신데도 기도원 예배가 끝난 후 한 번 더 예배를 인도해 주셨다. 그러면 엄마와 나와 진성이, 그리고 경숙이 이모가 목사님 곁에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다. 칼날과 같은 말씀으로 진성이의 믿음을 일깨워주시고 잘못된 부분은 책망하셨다. 진성이는 그 때까진 말씀에 대해 그렇게 깊이 책망 받거나 적용한 일이 없었으므로 어떤 때는 몸을 떨기도 했다. 40일 작정 예배가 지속되어 30일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엄마는 내년부터 더 교회와 아빠를 섬기는데 집중하시기로 했고, 이제 12월 중순인데 우리는 작정 예배드리는 것에도 익숙해 져서 처음의 결단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이대로는 결코 하나님이 치료해주시고 응답해 주실 때까지 인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진성이와 내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결단해야 할 때인 것 같있다. 그래서 작정 예배 31일 째 되는 날 엄마가 집에 돌아가시고 나서 진성이에게 말했다. "진성아, 아무리 작정예배를 드리고 금식기도해도, 은혜 받을 만한 믿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는 거 알지?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실 때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고 하셨는데, 니는 나을만한 믿음이 있나?" 진성이도 날마다 예배드리고 기도원에서 생활하면서 믿음과 신앙에 관해선 생각이 많이 깊어졌기 때문에 나의 질문에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작정 예배도 다 끝나 가는데, 솔직히 우리 너무 나태해 진 것 같지 않나? 내가 하나님이라면 이런 모습 보시고 은혜주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엄마도 금식도 하시고 우리를 위해 할 만큼 하셨으니까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 라고 제안하자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 참에 같이 주기도문으로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자고 권유했다. 진성이가 주기도문의 내용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기도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자 "내가 가르쳐줄 테니까 니가 같이 해준다면 나에게 너무 힘이 되고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 같다"고 분위기를 방방 띄워서 그 날 저녁부터 주기도문 기도회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때부터 또 다른 고난과 연단이 시작되었다.

  주기도문으로 아침, 저녁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것은 진성이의 삶의 습관과 질병의 휴우증과도 연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진성이는 그 때까지 삶에 질서가 없었다. 약을 먹기 때문에 늘 약에 취해서 잠을 많이 잤다. 그리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머리가 아프고 힘이 없기 때문에 누워서 핸드폰 게임을 종일 하였다. 게다가 병이 난 이후로 신경질적이고 고집에 세졌기 때문에 밥을 떠서 갔다 줘도 안 먹고 약 먹으라고 깨우는데 한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이런 불규칙하고 고집불통의 삶을 살고 있는데 기도회는 그야말로 하나의 도전이었다.
  오전 기도회를 하려면 아침에 사과를 깎아놓고 진성이를 깨우면서 약을 먹여야 한다. 그리고 의지가 약하고 몸이 약해서 기도회를 하기 싫어하는 진성이를 깨우면서 욕을 듣기도 싸우기도 했다. 진성이는 진성이 대로 몸은 힘들고 피곤한데 누나가 자꾸 깨우고 재촉하니까 화가 났다. 그래서 처음 기도회를 시작하고 6일 정돈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깨우고 기도회하자고 일으켜서 앉히는데 2시간이 넘게 걸리고, 그 와중에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도 한다. 그렇게 기도회를 시작하려면 형제와 싸운 일이 있거나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시기 때문에, 서로 사과하고 회개기도 하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나서 주기도문 기도회를 한 시간 하면 반나절이 지나서 오후가 되었다. 기도회는 "악에서 구하여 주옵시고"까지는 오전에 하고, 중보기도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자기 전에 했다. 그래야지 하루 종일 기도의 연장선상에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도 많이 싸웠지만 밤에 기도할 때면 진성이와 나는 우리에게 소망은 하나님 밖에 없으며, 우리의 믿음을 세워주셔서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도록 더 기도하기로 결단하며 잠을 잤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안 된다는 의지와 믿음이 우리 안에 쌓여져 갔던 것 같다.
  그렇게 주기도문 기도회를 하다가 해가 지난 2009년 1월 6일에 진성이와 또 대판 싸웠다. 진성이가 기도회 하기 싫고 나도 싫다며 방을 뛰쳐나가서 반나절을 이모네 방에서 지냈는데, 너무 심하게 화를 냈는지 오후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그렇게 싸우고 나서 간질발작으로 아팠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엄마는 볼일이 있어서 지금 기도원에 오실 수 없었기 때문에 불안한 오후를 진성이와 나만 보내게 되었다. 내가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 날이 내 생일이기 때문이었다. 진성이는 수면발작을 하기 때문에 왠지 잠들면 발작할 것 같아서 진성이 머리에 물수건을 얹어 놓고 농담도 하고 찬양도 부르면서 진성이를 간호했다. 그러다가 둘 다 동시에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꺽꺽 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깨어보니 이미 진성이는 간질 발작 전조증상으로 한쪽 팔이 들려올라가 있었다. 여러 번 겪은 상황이지만 매번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쓰러지면서 머리가 땅에 부딪치지 않도록 진성이를 안았다. 거품이 폐로 넘어가지 않도록 휴지로 닦아내고, 안정된 자세로 누울 수 있도록 몸을 받쳤다. 그런데 왠만 하면 1분이면 끝나는 발작이 한참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발작이 잦아들었는데도 진성이가 숨을 쉬지 않았다. 얼굴이 흑 빛이 되고 입술도 까맣게 변했다. 나는 너무 무서웠다. 엄마도 계시지 않고, 기도원 건물 중에서도 가장 외딴 곳에 있는 이 방으로, 아무도 와 줄 사람이 없었다. 폰을 들고 전화를 할 정신도 없었다.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이 죽어가요!!! 목사님!!! 살려주세요!!!" 창문을 향해 아무리 소리 질러도 사람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진성이 가슴을 펌프질 하듯이 누르면서, 억지로 페에 숨이 들어가게 했다. 그러면서 울부짖었다. "하나님!! 진성이 좀 살려주세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나님 진성이 좀 살려주세요!!!!" 얼만큼 진성이 가슴을 누른 걸까. 문득 갈비뼈가 부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성이를 쳐다보다 얼굴색이 돌아와 있었다. 울면서 진성이 얼굴을 닦고 혈액순환이 안 되서 차가운 손발을 사혈침으로 따서 피를 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저녁에 엄마가 오시고 진성이는 몇 번 더 발작을 하였다. 나는 너무 기운이 없고 괴로워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왜 하나님은 기도하고 있는데 이렇게 많이 아프게 하셨는지, 우리 엄마 마음이 저렇게 갈가리 찢기도록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하나님만이 진성이를 고치시고 우리 가정을 일으키실 것을 의지를 다해서 고백하였다.

  진성이는 이튿날 동아대 병원에 입원했다. 2008년부터 진성이가 입원하면 엄마는 아빠를 돕고 교회에서 기도하시고 내가 진성이를 간병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얼만큼 입원할지는 모르지만 짐을 싸서 진성이와 함께 병원에 갔다. 입원 수속을 밟으면서 진성이에게 이야기했다. "진성아, 우리 하나님께 결단하고 날마다 기도하기로 한거 기억하지? 우리는 기도에 목숨 걸기로 했으니까 병원이라고 기도 안해선 안 되겠지? 기도회 하려면 1인실에 가야되니까 지금 누나랑 같이 기도하자." 응급실에서 진성이와 기도할 수 있도록 1인 실을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는 아무도 없는 2인실에 입원했다. 그리고 하루 뒤, 1인실로 옮겼다. 진성이와 나는 입원해 있는 1주일 동안 결단한대로 아침, 저녁으로 기도했다. 찬송도, 기도도 모기만한 소리로 했다. 간혹 기도 할 때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오셨다. 그러면 침대에 나란히 같이 앉아 있는 우릴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보기도 했다. 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전우애가 생겼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화평해졌다.

  주기도문 기도회는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때까지 하기로 결단했지만 3개월 만에 끝나버렸다. 마귀가 결코 호락호락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진성이가 점점 마음이 굳어지고 나도 여러 가지 실수를 하면서 2009년 2월 초에 함께 기도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9) 은혜에 은혜가 더하여지다

  2009년 6월엔 집안의 경사가 있었다. 예한이 오빠가 결혼을 한 것이다. 그리고 6월에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진성이와 나는 1년 반을 좁은 방에서 함께 생활 했다. 진성이가 많이 아팠을 때는 간병인으로 함께 지냈지만, 2009년이 되자 간질발작 횟수도 한 달에 한두 번으로 줄어들었고, 몸과 영혼이 믿음으로 강건해졌기 때문에, 24시간 간병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다 큰 남매가 한 방에 지내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기도원에 진성이 방을 하나 짓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각자의 방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혼자 지내는 것이 기쁘고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잠이 많은 진성이는 아직까지 아침 약을 제때 챙겨먹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아침에 진성이 방까지 내려가서 약을 먹여야 했다. 그리고 불규칙한 진성이의 생활이 혼자 지내면서 더 불규칙해지고, 심지어 밤엔 자지 않고 낮에 실컷 자는 일까지 생겼다. 잠잘 때 진성이의 뇌가 치료되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과 잠자는 습관이 너무 중요한데 그것이 더 지켜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2009년 7월부터 다시 주기도문 기도회를 시작하기로 했다. 삶의 습관을 바로 세우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기도하지는 의도였다. 그런데 이것 역시 결코 쉽지 않았다. 진성이는 자기 방에 오지 말라는 둥, 잠이 와서 하기 싫다는 둥 핑계대고, 어쩔 땐 모질게 욕도 하면서 나를 힘들게 했다. 아침 9시에 진성이 방에 내려가서, 한 시간 반 동안 진성이를 깨우고 달래고 짜증을 받아주면, 11시가 되어서야 일어나서 한 시간 기도를 했다. 이번에는 아침과 점심에 기도회를 했는데 아침 기도회가 끝나면 또 점심이라서, 점심 기도회도 그 나름 전쟁이었다.

  8월의 어느 날은 진성이가 너무 속을 썩여서, 기도회를 끝내고 방에 돌아왔는데 울음이 터졌다. 이리저리 떼굴떼굴 구르면서 통곡을 하였다. 그 때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야 했는데, 그만 내 감정에 취해서 사단의 꾀임에 넘어갔다. 그 이후로 내 마음속에 미움이 생기고,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이 생긴 것이다. 그런 감정을 다스리고 기도로 뽑아내는데 일 년이 걸렸다. 사단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틈을 노리고, 그 틈을 이용해서 악랄하게 악한 세력을 휘두르는지 절감했었다.
  다시 시작한 주기도문 기도회는 진성이가 목사님께 축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중단하였다. 진성이도 주기도문 기도회를 6개월간 하였기 때문에, 이제 혼자서 날마다 한 시간 이상 기도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처음엔 내가 일일이 가르쳐주고 말씀도 하나하나 적용하면서 기도회를 인도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진성이도 3일에 한 번씩 기도회를 인도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내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셔서, 진성이에게도 그렇게 주기도문 기도를 가르쳐 주었는데, 진성이에게도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나중엔 진성이가 나누는 말씀에 내가 은혜를 많이 받았다. 나는 기도회를 끝마치고 나서 이렇게 죽을 만큼 열심히 하나님 앞에 노력했는데, 진성이 병은 낫지 않은 것을 보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조금 실망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모두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고 2009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 2010년이 되자, 기도원에 진성이 또래의 청년들이 많이 올라와서 신앙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진성이가 마음이 맞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주기도문 기도회를 시작하였다. 아직 주기도문 기도가 서투른 친구에겐 주기도문 기도를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진성이의 기도의 분량도 한 시간 이상 유지되었다. 처음엔 막무가내로 했던 기도가, 진성이와 나를 세우고, 이제는 그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까지 세우게 되었다. 나는 결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하나님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우리에게 부어주셨다.

  10) 말씀이 혼을 쪼개고 영을 쪼개고 육을 쪼개고

  기도원에서 생활한지 만 2년이 지나자 진성이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날마다 예배드리고 설교를 듣고, 또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삶이 쌓이자, 말씀이 살아서 진성이 안에서 역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목사님이 날마다 축사해주시고 엄하게 가르쳐 주신 것도 결정적이 역할을 하였다.
  먼저 진성이의 성품이 변하였다. 신경질내고 고집 부리던 것들이 사라졌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죄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깨달으면서 회개도 진실 되게 하였다. 누나에게 잘못했다가도 이후에 성령께서 진성이의 심령에 근심하시고 책망하시면 자존심을 버리고 사과했다. 죄로 인해 사단이 틈타게 되고 고통이 따라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행동도 변화시켰다. 엄마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안 되는 일들이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실제로 역사하게 되었다. 진성이의 믿음도 급속도록 자랐다.

  하루는 오전에 기도하고 있는데 진성이가 내 방으로 뛰어왔다. 그렇게 해맑은 얼굴로 "누나, 나는 내가 뇌염을 앓은 게 너무 감사해. 내가 안 아팠으면 기도원도 안 오고 기도도 안하고 하나님도 몰랐을 텐데, 아파서 이렇게 기도하고 하나님도 만났잖아. 아프지 않았으면 목회자도 절대 안하려고 했을 텐데, 이렇게 아팠기 때문에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잖아"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랍고 감동이 되어서 진성이 얼굴이 천사같이 보였다. 갑자기 늠름한 백마같이 힘찬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바란 것은 육신의 치유였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매달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혼을 쪼개셨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 없도록 막고 있는 죄의 찌꺼기와 악성과 악습을 쪼개시고 말씀을 주셨다. 그것이 2008년부터 2009년까지의 기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예배드리고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영에 임재 하셔서 성령으로 우리를 채워주셨다. 말씀이 영을 쪼개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은 잠잠하면서도 깊은 말씀의 은혜로 진성이와 나와 엄마를 인도해 주셨다. 그리고, 어느샌가 하나님의 말씀은 육을 쪼개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11) 진성이는 뇌가 쪼그라들었어요.

  2010년 가을이 되자 기도원에서 신앙훈련 받는 청년들 중 몇 명이 대학교 수시에 지원하였다. 진성이는 아직 독한 약을 먹고 있는데다가, 체력이 약하고 조금만 무리해도 몸이 힘든 상황이었다. 간질발작은 2010년 들어서 아주 약해지고, 진성이의 정신이 튼튼해져서 예전만큼 진성이에게 극성을 부리지 못했다. 그래도 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서, 대학 진학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런데 목사님이 어차피 대학 간다면 붙어놓고 휴학해도 상관없지 않냐며, 수시지원 하도록 격려하셨다. 진성이는 한 달 정도 기도하고 나서 침례신학대학교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온천교회와 다른 교단이라서 아빠의 승낙을 받기 힘들 것 같았지만, 함께 훈련받은 친구들이 네 명이나 진학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진성이에게 좋은 기회였다. 아빠 몰래 수시 지원서를 작성하고 아빠에게 싸인을 요청하자 당연히 아빠는 반대하셨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미국에는 조부와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교단이 다른 목회자도 있다는데, 교단 다른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아빠도 나중엔 승낙하셨다. 진성이가 침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시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했으나 목욕탕에서 부랴부랴 침례를 받고 증명서를 냈더니 12월에 합격 발표가 났다. 그 때까진 진성이가 대학가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발표가 나자 진성이가 과연 학교생활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3년의 기도원 생활을 점검하고 또 진성이의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서울 삼성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하기로 했다. 2011년 1월에 일주일간 입원해서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물론 이번에도 간병인은 나였다. 예전과 다르게 아주 건강해진 진성이는 간병인이 간식 먹고 자는 동안 알아서 환자복이랑 이불도 바꿔오고, 주사도 챙겨 맞는 모범 환자가 되었다. 여러 가지 정밀 검사가 끝나고 의사선생님이 진단을 내리기를, "진성이 뇌의 염증으로 생긴 상처는 모두 치료되었음. 단 육체가 무리했을 때 조절해주는 뇌의 어떤 부분이 손상되어서 무리하면 다시 간질발작을 할 수 있으므로 체력관리만 잘하면 됨. 그리고 감정조절을 해 주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해 감정의 기복이 심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함. 그리고 3년 동안 조용한 곳에서 요양을 잘하고 잘 자서 진성이 뇌는 수축되어 있는 상태임. 이제 공부도 하고 활동도 하면서 뇌를 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음" 라고 했다. 뇌염의 상처는 깨끗이 회복되었다. 언제 어느 시점에 그런 일이 생긴지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만 바라던 어느 시점에, 말씀이 진성이의 혼을 쪼개고 영을 쪼개고 육을 쪼개어 치유해 주시고, 대학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신 것이다!! 게다가 진성이는 너무 뇌가 잘 쉬었기 때문에, 뇌가 쪼그라들었다고 한다. 이제는 뇌를 사용하고 활성화 시켜야 한다니, 대학에 진학하게 된 것이 얼마나 적절하게 이루어 졌는가!!

  하나님은 신묘막측하시다. 2007년 11월에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진성이를 기도원으로 데리고 올 때, 우리는 아무도 이 일을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진성이의 치유를 바랐는데, 하나님은 나를 고치시고 진성이를 고치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을 축복해 주셨다. 하나님은 세계 최고의 연출가이시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관객들을 몰아가서 감당할 수 없는 감동의 도가니로 빠뜨리신다. 할렐루야!!

12) 엄마는 달리면서 운다

  지난 4년을 돌아보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가 너무 놀랍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정송순 엄마의 눈물 젖은 주행. 한 명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약해서, 한 명은 뇌염으로 인한 간질 발작으로. 두 자녀를 산골 기도원에 두고 집에 돌아오는 엄마는 날마다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 어떤 날은 차마 집에 돌아갈 수가 없어서 차 안에서 앉아 울고, 기도원 예배실에서 엎드려 기도하다가 새벽녘에서 발길을 돌렸다. 하루에 잠을 3시간 이상을 주무신 적이 없다. 다섯 시간 이상 날마다 기도하면서 살림하고, 또 아픈 자식들을 돌보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지난 3년간 엄마는 몸의 한계를 여러 번 경험하셨다. 황달이 흑달이 되도록 금식하고, 연골이 닳도록 기도원을 오르락내리락 하셔서 무릎이 아프고, 빈혈에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끙끙 앓았던 몸살까지. 그래도 날마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까지 제가 섬기겠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진성이와 나를 돌보셨다. 믿음이 없어서 주저앉아 있을 땐 크게 혼내기도 하고, 하나님께 목숨 걸고 순종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삶으로 보여주셨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듯 아빠를 섬기고, 하나님의 종을 섬기듯 우리를 섬기셨다.
  2009년 큐티 노트엔 나의 기도제목이 하나 적혀있다. "엄마가 날마다 흘리는 눈물이, 약속대로 자식을 얻은 사라의 기쁨의 눈물로 변하게 하여 주세요." 그리고 지난 주 수요일, 진성이를 학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도록 데려다 주고, 예배를 드리면서 엄마는 하염없이 우셨다. 셀 수도 없이 기도원을 오가며 차 안에서 흘렸던 눈물이, 기쁨과 감사의 눈물로 변하였다.

  13) 아빠의 놀라운 희생

  아빠가 설거지를 하던 날 나는 너무 놀라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진성이가 처음 아파서 입원 했을 때, 아빠는 설거지도 하시고 밥도 혼자 챙겨 들기 시작하셨다. 그러다가 엄마가 기도원을 오가게 되면서, 아빠는 혼자 계신 날이 더 많이 졌다. 슬프게도 연말, 연휴, 명절에도 아빠는 혼자 계셨다. 어쩔 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한테 슬픈 문자를 보내기도 하셨다(고 엄마가 말해주셨다). 목회하면서 힘든 일도 많으셨을 텐데,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세워지기까지 기다리고 희생해주신 아빠. 요즘엔 국도 데우고 반찬도 꺼내서 알아서 식사를 챙겨 드신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역사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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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믿음방 교의신학 1권 서론. 종교의 객관적 요소 - 계시 김병광 2013.12.09 7537
15 믿음방 교의신학 1권 서론. 신학이란 무엇인가? 김병광 2013.12.06 7323
14 믿음방 교의신학 1권 서론. 종교란 무엇인가? 김병광 2013.12.06 7430
13 믿음방 교의신학 1권 서론. 교의신학이란 무엇인가? 김병광 2013.12.05 8306
12 믿음방 방장의 공지사항입니다. 김병광 2013.12.05 6532
11 자유방 행복이란 虛虛 2013.11.05 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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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원전 방사능 노출시 요오드제품의 사용 김병광 2011.05.02 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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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위암 예방법 김병광 2011.05.02 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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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낙원을 꿈꾸다(헌시(獻詩). 김덕규 장노님) 김병광 2011.05.02 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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